어릴 적엔 어머니께서 매번 콩으로 메주를 담그고 그걸로 된장찌개를 만들거나 삶은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었다.
내가 콩자반을 좋아하다 보니 항상 커다란 궁중팬 같은 것으로 콩자반을 만드셨는데, 늘 오랫동안 불 앞에 있어서 많이 힘들어 하셨다.
옛날 우리집은 일제 강점기 때 지었던 집이어서 아주 오래된 집이었는데, 부엌이 너무 불편했다.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나가면 다시 1m 쯤 되는 높이의 단을 내려가야 했다.
늘 그곳에서 가족들 먹을 음식을 하셨는데, 당시에는 냉장고도 없어서 매번 그때 그때 반찬을 만들고 국과 찌개를 끓이셨다.
내 기억으로는 고추장이나 된장, 간장 등을 직접 만드셨고, 빨래도 세탁기가 없어 손빨래를 하고 마당을 지나는 빨래줄에 널어 놓았었다.
겨울엔 그 빨래에 기다란 고드름이 맺혔고, 우리는 고드름을 따는게 일이었다.
일곱 식구의 살림을 평생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다.
그 오래된 집에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다가 이사를 갔다.
이사한 집은 그래도 당시 보편적인 입식 부엌이었고, 욕실도 화장실에 딸려 있어서 조금은 편해졌지만, 어머니의 일거리가 줄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 그 옛날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자꾸 생각이 난다.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 자식들 키우면서 집안을 꾸려 나가신 걸 생각하면 그 고생이 가늠이 안된다.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 이젠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신은 아득하게 흐려지고 거동도 어려운 상태다.
화장실을 방금 다녀 왔는데, 기억을 못하고 다시 가는 일들이 빈번하고, 나 보고는 아저씨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런 저런 지병으로 몸 상태는 엉망이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간다.
요즘은 병원에서 해야 할 이런 저런 검사들도 강하게 거부하시고, 약 드시는 것도 거부하실 때가 많다.
사람들이 어머니를 괴롭힌다고 생각해서 그런건데, 자식들이 매달려 설득을 해봐도 별 소용이 없다.
내가 언제까지 어머니를 모실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상황들이 좋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계속해서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옛날 음식들이 생각난다. 뜬금없이...
다시는 그 음식들을 먹어볼 수 없을거란 생각과 함께 자꾸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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