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6일 금요일

New Philosopher vol.9 - 삶을 죽음에게 묻다.

 


<New Philosopher> vol.9
삶을 죽음에게 묻다.


10   News from Nowhere
18   Feature  죽음이라는 위대한 스승  팀 딘
26   Interview  삶과 죽음  클라우스 보
48   Comic  바다의 노여움  코리 몰러
52   Feature  잘 죽는 법을 알려주는 것은 철학보다 상상력이다  톰 챗필드
58   Feature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68   Feature  사후 세계는 존재할까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74   Feature  죽음은 편도 여행만 허락한다  패트릭 스톡스
90   Interview  오늘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수 블랙
106  Feature  죽음이 전시되는 세상  티파니 젠킨스
114  Feature  어느 철학자의 죽음  나이젤 워버튼
122  Feature  불멸 프로젝트  마리나 벤저민
130  고전 읽기  죽음 속에 큰 행복이 있다  세네카
136  고전 읽기  노인과 죽음 <이솝 우화>
140  6 thinkers  죽음 Death
142  Coaching  죽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드나요 ?  매슈 비어드
146  Our Library
148  Essay  우리 시대의 대멸종  찰스 포스터
156  Interview  나만의 인생 철학 13문 13답  리처드 존스


요즘 '죽음'에 대한 글이나 책들이 제법 많이 나오고 있고, 성찰의 대상으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뉴필로소퍼>에서도 죽음에 대해, 또는 삶에 대해 이렇게 이슈를 발행했는데, 실은 이번 호는 지난 1월에 발행된 vol.9 이다.
1월에 구매해서 한번 읽고 넣어뒀다가 이번에 다시 읽어봤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늘 관심있는 주제였는데,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이 지난 3년여를 보내면서 조금 바뀌었다.
물론, 특별한 계기가 있었고, 지금은 이 책에 실린 정도의 글들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유의 필요성과 그로인해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이다.

<죽음이라는 위대한 스승>은 철학자인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동안 알고 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성숙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며, <인생은 너무 짧다>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삶이 의미 있는 것 아닌가 말하고 있고, <죽음이 전시되는 세상>에서는 죽음에 대해 거리를 두거나 죽음을 소비하거나 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어느 철학자의 죽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남은 삶이 오로지 고통뿐인 경우에 조력 자살이 필요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늘 그렇듯이 두 꼭지로 실린 인터뷰에서는 사진 작가 '클라우스 보'와 법의인류학자인 '수 블랙' 랭커스터 대학교 교수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실린 '클라우스 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그가 <Dead and Alive Project>를 통해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그들의 장례문화와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을 담고 있으며 그의 사진들도 함께 실려있다. 
이를 통해 그는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 잘못된 문화이며 모두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수 블랙' 교수와의 인터뷰는 <오늘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수많은 현장에서 다양한 죽음과 대면하는 경험을 통해 그녀가 생각하는 죽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한편, 고전 읽기 편에서는 세네카의 글과 이솝우화가 실렸는데, 이중 이솝우화를 아래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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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죽음>

어느 힘없고 가난한 노인이 땔나무를 주우려고 집 근처 숲에 힘겹게 나갔다가 나뭇짐을 만들어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인은 나이도 많고 돌아갈 길도 멀고 짐도 너무 무거워서, 점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려지다가 나뭇짐 밑에 깔리고 말았다.
노인은 땅바닥에 주저않은 채로 딱 한번 죽음을 부르며 제발 나를 찾아와서 이 괴로움을 덜어달라고 부르짖었다.
죽음이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그를 찾아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 가련한 노인은 죽음의 끔찍한 모습에 겁을 먹고 거의 정신이 나간 채로 덜덜 떨며 죽음에게 대답했다.
자기가 실수로 나뭇짐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혼자 들어올리기에는 몸이 너무 노쇠해서 용기를 내어 도와달라고 죽음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자신이 원하는 전부이고, 자기가 멋대로 불러내어 죽음이 언짢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는 덧붙였다.

- "해설"
이 우화는 가장 음울한 공포의 왕인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의 등 뒤에서는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길을 가다가 작은 접촉 사고만 나도 곧바로 죽음을 입에 담는다.
심지어 너무도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삶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행위가 합법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조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내려 하면,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느낌만 들어도 사람들의 생각은 바뀐다.
계속 살 수만 있으면 기꺼이 그들의 오랜 짐을 다시 어깨에 짊어지려 할 것이다.
이렇듯이 아무리 늙고 가난하고 비참해도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데, 하물며 젊고 건강하고 온 몸에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지독히 죽음을 혐오할 것인가.

<이솝 우화>, 새뮤얼 크록설, 18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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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많지는 않지만 몇가지 책도 읽어보고, 몇몇 글들도 읽어봤다.
세세한 내용들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대부분의 내용들이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유, 아름답고 존중받는 노년,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등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도 글들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이런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3년여, 우연치않게 여러 노인들의 삶을 지켜볼 일이 있었고, 몇몇 부고를 전해 듣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물론, 당연히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유는 필요하다. 
이건 남은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겪고 있는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아름답고 존중받는 마지막 삶이 가능하기나 한가 싶은 생각이 든다.

몸은 병들어 아프고, 정신은 흐려져 본능만 남게 되며, 비슷한 사람들로만 채워진 요양병원에서의 삶이 과연 얼마나 아름답고 존중받는 삶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책이나 미디어에서 보듯이 정말 끝까지 존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노인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인 것 같다.
내가 본 대부분의 노인들은 말그대로 지옥같은 삶을 유지할 뿐이었다.
노인들의 특성상 밤에 잠을 잘 못자는 경우도 많은데,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는 노인들을 재우려 수면제나 수면 보조제 등을 처방하고 노인들의 가족들조차 이런 것들을 당연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양병원의 삶에 적응해 나간다고는 하지만, 과연 이들의 삶이 아름다운 삶인지...
설령 가족들이 집에서 노인들을 모신다해도 노인과 그 가족의 삶이 어떤지 세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노인은 노인들대로 괴롭고 가족은 가족들대로 괴로울 뿐이다. 

가난하고, 또는 가난하지 않더라도, 병들어서 거동을 못하거나 정신이 흐려져서 이성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거나 한다면, 그 남은 삶은 고통일 뿐이다.
우리가 책이나 미디어에서 전해들은 것처럼,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죽음 그 자체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도, 그 죽음에 도달할 때까지의 남은 삶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고 참을 수 없는 지옥이다.

나는 이제 더이상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하는 글들을 읽을 생각이 없다.
그건 그저 환타지일 뿐이다.
단,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름다운 노년과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고통스럽고 지옥같은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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