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언론의 균형 잡기" - New Philosopher vol.8 중에서...


2018년 3월의 어느 날, 마이크 휴스는 자신이 만든 증기기관 로켓에 올라타고는 모하비 사막 700 미터 상공으로 날아 올랐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산산조각나지 않고 약간의 부상만을 입은 채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는 우주로 나간다는 생각에 매료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그는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이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저는 지구가 원반처럼 납작하다고 생각해요. 확신하냐고요 ? 당연히 아니죠. 그래서 우주에 나가서 직접 보고 싶은 거예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지만,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들 사이에 두 가지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여전히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강해졌다.
이러한 신념을 보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식론적 반란에 해당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이 자유사상가이자 개인주의자임을 드러내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 (Flat-earther)'이라는표현 자체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아무도 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속어가 되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은 단순히 잘못된 믿음이 아니다.
이런 신념을 가진 집단은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식에서 벗어난 관점을 지닌 이들이다.

우주여행이나 세계지리를 다룬 TV 프로그램이 그들의 생각까지 반영하는 등 '균형'을 잡아주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이러한 처사가 매우 불공평하거나, 어쩌면 심각한 음모가 연루된 일이라고까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우주 관련 채널에 평평한 지구 가설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히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이 다른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불편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뉴스와 시사 논평 채널이 특정한 노선을 지지하기보다 주제와 관련된 서로 다른 관점들을 다채롭게 조명하기를 바란다.
대중은 '균형 잡힌' 언론을 원한다.
보수적인 폭스 뉴스마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 (Fair and Balanced)'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걸 보면, 특정한 이념에 치우친 사람들조차 편파적인 언론은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언론 보도에서 균형이 지니는 역할은 분명하다.
우리는 언론이 단순히 상황을 보여주는 대신 불확실한 부분까지 공정하게 드러내주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사실관계에 애매한 점이 하나도 없다면, 언론은 단순히 정보 전달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으며 세상은 도덕적, 정치적 이견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언론은 정보 전달의 통로인 동시에 다양한 논쟁을 조명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딘가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이 있다면, 우리는 그와 관련된 모든 관점을 듣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원한다.

이러한 대중의 욕구는 18세기에 일어난 사회 변화의 결과물이다.
바로 그 시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고 역사는 말한다).
이마누엘 칸트는 말했다.
"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
다시 말해서, 세상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단순히 왕이나 교회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칸트의 사상은 폭스뉴스가 설립 당시 선보였던 그들의 실제 행동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슬로건으로 정확히 표현된다.
"보도는 우리가, 판단은 시청자가 (We Report, You Decide)."

균형의 기본은 논쟁의 당사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언론인들은 훈련 초기부터 이런 태도를 연습해야 한다.
그들의 사명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달자가 되는 것이지, 특정한 의견에 치우친 이해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폭스뉴스가 대중들에게 비난받은 것은 '공정하고 균형잡힌 보도'라는 슬로건 때문이 아니라, 그 슬로건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형이 곧 중립이라는 견해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어째서 우주여행을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볼 수 없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대답은 분명하다.
애초에 지구가 납작하다는 주장 자체가 헛소리인 이상, 우리는 그 가능성의 진실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없다.

균형이란 언제나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어떤 목소리에 살펴볼 가치가 있고 어떤 주장에 무게를 실을지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해야 한다.
인생은 짧지만 뉴스 프로그램은 훨씬 더 짧으며, 시간 관계상 잘라내야 할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17세기 시인 앤드루 마블이 노래했듯이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있었더라면" 모든 관점과 주장을 살피고 지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작가 데이비드 아이크가 설파한 악명높은 음모론에 따르면, 영국 왕실은 인간의 탈을 쓴 파충류 외계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국 여왕에 대한 뉴스를 전하면서 그가 도마뱀인지 아닌지까지 신경써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사실들에 비춰볼 때, 놀랍게도 '균형'이란 대체로 방송에서 어떤 관점을 배제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대중의 합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시각을 일일이 조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나친 혐오를 담고 있거나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되는 주장 또한 대중의 담론에서 제외될 수 있다.
물론 꼭 필요한 관점을 무시한다면, 가령 자신의 혐의에 항변할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관점과 전혀 필요없는 관점이라는 양극단을 제외한다고 해도, 언론에게 주어진 개인적 재량은 여전히 엄청나다.

진짜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 된 주제의 상당수가 애초에 논쟁의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의 모양을 논쟁의 대상으로 볼 수 있을까 ?
만약 의견 불일치가 그 자체로 논쟁의 근거가 된다면, 엄밀히 따졌을 때 논쟁을 일으키지 않을 주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과학 잡지에서 지구의 모양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
지질학계가 지구의 모양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나 예방접종의 효용이나 안전성을 포함하여 언론에서 종종 다뤄지는 실질적이고 과학적인 논쟁의 경우는 어떨까 ?
이런 문제들의 이면에는 대중이 채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의 전문 의견과 더불어 온갖 아마추어와 사이비 과학자들의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많은 경우 그 논쟁의 범위를 단순한 '찬반' 양론으로 분류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언론은 서로 다른 주장을 놓고 대립하는 두 개의 주요 진영을 비출 뿐이다.
그 '주요' 진영이 토론에 초대되었다는 것은 누군가 그들의 의견이 들을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토론이라는 포맷 자체는 그 행위에 참여한 당사자들에게 동등한 중요성과 진정성을 부여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게 뭐 어때서 ?' 라고 당신은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가 알려고 하면 되잖아 ? 똑똑하고 현명한 시청자가 질 나쁜 논쟁과 조악한 주장을 걸러내면 그만이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증거를 보면 현실은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는 이미지는 '저렇게 조잡한 거짓 주장을 하다니 말도 안돼' 보다 '진짜 제대로 된 토론이 진행되고 있구나'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을 '가짜 균형 (False Balance)'이라고 불린다.
편견과 균형의 차이만을 중요시하는 단순한 관점으로는 '진짜' 균형과 '가짜' 균형을 구분할 수 없다.
진정한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은 중립성에만 목을 매는 태도를 버린다는 뜻이다.
가짜 균형은 우리가 불충분한 관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주장을 진정성 있는 주장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할 때 발생한다.

가짜 균형을 피하기 위해 언론은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와 그렇지 않는 주장 앞에서 맥락을 충분히 고려한 선별 작업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한다.
균형을 잡으려면 지속적인 노력과 재정비가 필요하다.
균형을 잃은 순간, 우리는 평평한 지구의 끝에서 추락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New Philosopher> vol.8 - "언론의 균형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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